Ex Libris/Moderna

남자의 인생

storyway 2012. 7. 11. 03:50

 

 

남자의 인생 / 원재훈 지음, 학고재, 232쪽

 

광화문 사거리를 산책하면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어디론가 걸어간다. 만화의 말풍선처럼 그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어떤 생각들이 읽힌다. 돈을 벌어야 한다, 이번 달에는 어떻게 견뎌야 하나, 그녀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나, 하여간 욕망은 가득한데, 현실은 막막하다. 욕심과 분노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중요한 판단의 순간에 결정적인 악수를 두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는 모습이 비슷한데 참 어렵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 거기에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온 인물들이 보인다. 중국 고대의 인물이나 21세기 광화문의 인물이 큰 차이가 없다.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한 칸을 가기도 하고, 포처럼 날아가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장기판에서 나는 포인가 차인가, 졸인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요즘 남자에게 인생이라는 것이 있느냐면서 자조하는 친구들. 제법 건실한 사업체를 이끌다가 부도를 낸 친구가 주말에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혹시 자살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벌집구조처럼 촘촘한 자본주의, 물질만능의 구조 속에서 각종 첨단 문명의 발달로 남성의 근육과 지성이 낡은 지하철 승차권처럼 초라해질 때, 문득 중년이 되어버린 나를 보고, 노새처럼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또 다른 남자들을 봤다. 그때 사기열전을 읽고 온 인생을 살아낸, 광야를 달리는 준마 같은 사내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인맥을 찾아가자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 책을 쓴 이유다.

 

사기 '열전' 에는 고대 중국을 움직인 사람들, 즉 공자의 제자들을 비롯해 장군, 시인, 자객, 점쟁이, 정치인, 개그맨, 장사꾼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한때 우리가 꿈꾸었던 인물들이기에 내 인생의 전범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삶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객열전의 형가나 예양과 같은 경우 굳이 자객으로 살지 않아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호의호식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대의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피투성이 가시밭길이다. 우리 근대의 안중근 의사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의사 편작은 의술과 인품 면에서 우리 동의보감의 허준이나 장기려 박사님을 떠올리게 한다. 화식열전에 나오는 부자들은 누구라고 예를 들지 않아도 재벌가의 회장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럼 나는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와 소설을 쓰는 나는 당연히 굴원이나 가생과 같은 시인의 삶에 관심이 간다. 참 지독하게 어려운 삶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사마천은 왕의 분노를 사서 무고하게 궁형을 당한다. 참 억울한 일이다. 그는 자결도 생각하면서 외롭고 괴로운 변방, 주변부에서 머문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만들어버린다. 태양은 자리를 움직이면서 빛나지 않는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당신의 그 초라한 그 자리가 바로 세상의 중심이 된다.

 

건강하시길.

 

 

Words :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 / 신동아 2012년 6월호, p. 594

 

Photo : Mark Brosnihan,M.D., Untitled Sur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