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Libris/Moderna

고대 그리스 자연학과 도덕

storyway 2011. 6. 1. 16:54


박윤호 (2004),『고대 그리스 자연학과 도덕』서울: 서광사.
우리 사회에서 종교와 전통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과학적 지식이 더 대중화되고 문화의 구석구석에 확산되고 있다. 자연과학은 언제나 물질적 증거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것은 물체를 우선하는 유물론의 관점을 취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각 분과과학들은 물질을 우위에 놓는 원자론이라는 자연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입장이 확산되는 시대에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윤리학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현대와 비슷한 문화적 사정 속에서 열띠게 진행된 법과 도덕에 관한 논쟁들이 여기에 적지 않은 시사를 줄지도 모른다. (pp. 295-296) 
책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가끔은 어떤 인연이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쩐지 '인연'이라는 용어가 주는 특별한 향수가 있는지, 불교 용어인듯한 인연이라는 말을 쓰고 싶을 때가 있으니 이 책을 만난 때가 바로 그러한 때다.

인간이 지닌 삶의 영역 중 특히 도덕 및 윤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특히 "IV부, 자연학과 도덕" 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제목과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잡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박교수님의 개인적 인생사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박윤호 교수님은 서울대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경남대 철학과 조교수, 부교수를 역임했다. 2003년 영국 Oxford 대학 Corpus Christi College 박사과정 중 급작스런 병으로 작고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유고집인데 "정암학당" 이라는 그리스 철학 연구자 모임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면에서 마음이 가게 되었다. 한 편으로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대하여 그리스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그분의 시각이 매력적이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어쩌면 나의 삶과도 유사한 그분의 인생사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작용하게 되었다.

철학으로 대학에 자리잡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 한국사회 학계의 풍토인데, 그분이 경남대학교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또 부교수 직위까지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까. 그렇던 그분이 교수직 휴직을 불사하고 처자를 한국에 남겨둔 채 홀홀단신 영국으로 제2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떠나고자 결단하고 실행에 옮겼을 때, 그분의 마음은 어떠하며 그분의 가족들이 지녔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이별한 것이 이땅에서의 이별이기도 했다는 것을 서로가 알았을까. 

어쩌면 그분의 결정은 순수하게 공부에 대해 좋아했던 면도 있었겠지만, 내면에 있는 국내박사로서 지니는 한계 역시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남은 자의 시각에서 보면 그분은 행복하기도 하니, 정암학당이라는 학문 공동체에서 동학들이 그분을 기려서 이렇게 유고집을 내는가 하면 추모 행사도 가끔 가지는 듯 하니 아마 그분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을 듯 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내가 박교수님처럼 몇 편의 글만 남긴 채 소천한다면, 내가 속해 있는 학문 공동체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구체화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박교수님처럼 이른 나이에 하나님 곁으로 갈 일은 없을듯 하다. 물론, 천재는 요절한다는 속설에 비추어 보아도 나는 천재가 아님을 자각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겠다.

어쨌건, 박교수님의 글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그분은 플라톤의『법률』로부터 법과 정의의 출발점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 내재되어 있는 윤리적 입장을 밝히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이것을 BC 5C 후반 아테네에서 열띠게 진행된 노모스(nomos)에 관한 토론과 연관짓고자 한다. 이에 플라톤의『법률』10권에서 "일정한 자연학은 일정한 윤리학을 함축한다" 는 논제의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시도하였다. 

박교수님의 글은 연구계획서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그분의 업적이 완성되었다면 상당한 학문적 성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분의 글은 향후 내가 읽어 나갈 독서의 방향 설정 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박교수님에 대해 교수신문에 나온 글을 하나 덧붙여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