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Life

부시맨의 크리스마스

storyway 2011. 5. 27. 22:42


아프리카 칼라하리 (Kalahari) 사막의 석양이다.
아래의 동화같은 글은
Richard B. Lee 라는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살고 있는
부시맨의 삶을 연구하며 알게된 것을 서술한
"Eating Christmas in the Kalahari" 라는 글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
배움이 많지 않을진대
그들조차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해
우리는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모른다면 그렇게 무지한 것인지,
알고도 무시한다면 그
렇게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지.
 
"잘난체 하거나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의 교만이나 자만심이 언젠가는 ... 
 언젠가는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내게도 그런 모습이 없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사진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 사진 중
글과 적당히 어울리는 것을
내가 임의로 선정해서 붙인 것이다.

설마, 이 사진들이
실제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이 글은 Natural History Magazine, vol 78, no. 10 in 1969. 에 맨 처음 게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문화인류학회 편,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서울: 일조각 2002, pp. 33-46.
에서 원문을 읽을 수 있다.

영어 원문은 http://www.mc.maricopa.edu/dept/d10/asb/anthro2003/lifeways/kalahari/kalahari.html 에서 볼 수 있다.



나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 부시맨족(the !Kung Bushmen)과
함께 생활하면서
크리스마스때 소를 잡는 그들의 관습이
내게 현지조사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쿵 부시맨족에게 알려진 것은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가
19세기 초반에 칼라하리 사막 인근의
남 츠와나(Tswana)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한 이후부터이다.

그 후 원주민 출신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토착 전도사들이
칼라하리 사막의 가장 먼 구석까지
크리스마스를 전파시켰다.

이러한 선교활동의 영향으로
이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이웃 부족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잡아 대접함으로써
선의를 표하는 관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부시맨들은 1930년대 이후부터 크리스마스에는
연례행사처럼 소를 잡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원래 나는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생계경제의 특징을 연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현지조사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내 식량을 제공하거나
음식을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의 식량채집활동을 간섭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적어도 2개월 간을 버틸 수 있는
통조림을 가진 인류학자와
수중에 단 하루 동안의 식량도 갖고 있지 못한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현지의 자료를 얻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지불했지만
그들은 나를 매우 인색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평판이나 비난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임하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한 사람의 구두쇠일 뿐이었던 것이다.


현지조사 기간 중에
그들이 베풀어준 도움과 협력에 대해
나름대로 감사를 표시하고 싶었던 나는
크리스마스에 그들에게
황소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날은 내가 현지에서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크고 살찐 황소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야만 크리스마스 축제와
신들려서 춤추는 의식(trans dance)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2월 초부터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내가 정한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큰 소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10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헤레로족(the Herero)의 한 친구가
우리 부족 사람 모두를 먹일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황소를 갖고 왔다.

그 소는 짙은 검정색에,
지면에서 어깨까지의 높이가
약 1.5m 에 달하고,
다섯 발자국 길이 높이의
거대한 뿔을 갖고 있으며,
발굽까지를 포함한 몸무게가
약 550 kg은 족히 나갈법한
덩치가 무지무지하게 큰 황소였다.

내 전공이
식량 소비를 계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뼈와 내장을 뺀 순 살코기만의 무게가
어느정도 될지 재빨리 재 보았다.
그랬더니 이 부족 사람들 각자에게
거의 2kg 씩 나누어 줄 수 있는 양이었다.

이 정도라면 축제에 참석할
아이아이(ai ai) 지역의 부시맨 150명 전부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내 마음에 쏙 드는 소가 나타난 것이다 !

나는 그 헤레로족 친구에게
20파운드(미국돈으로 약 56$)를 지불하고
크리스마스까지
그 황소를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헤레로족은 아프리카 남서부
츠와나 지역에 사는 반투족의 일부이다.)


다음날 아침 온타(ontah)가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해
검은 황소를 마련했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온타는 리처드 리의 부시맨 이름으로,
부시맨 말로 '흰둥이'라는 뜻이다.)

그날 오후에 다섯 명의 자녀를 둔
60세의 벵아(Ben!a) 할머니가
나를 찾아와 내게 이렇게 물었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어디서 하기로 했죠?"

"바로 여기 나이나이에서요."
 내가 대답했다.

"혼자 먹을건가요?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건가요?"

"사람들을 모두 초대할 생각이에요."

"뭘 먹으려고요?"

"예하베(Yehave)의 검은 황소를 샀는데, 
 그걸 잡아서 같이 먹으려고 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소를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렇지만 그 소에 대해
 당신한테 직접 듣고 싶어요."

"그래야죠. 그건 검은 황소예요."

그녀가 듣고싶어하는 얘기가 뭘까
궁금했지만 나는 선뜻 대답해 주었다.

"오, 큰일났군.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는 것 같군요.
 당신은 우리가
 그 바짝 마른 소를 먹기를 바라나요?"

"바짝 말랐다구요!
 그건 아이아이에서 가장 큰 황소예요."

"크다구요? 맞아요. 크긴 크지요.
 하지만 너무 늙었어요.
 그래서 말랐다고 하는거예요.
 늙은 황소는 살이 없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지요.
 그런 걸 사서 뭘 얻으려고요. 뿔인가요?"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우리 둘 사이의 대화를 듣고는
모두 낄낄대고 웃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들을 향해 씽긋 미소짓는 것 뿐이었다.


그날 저녁에 한 떼의 젊은이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왔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가우고(gaugo)가
내게 일대일로 직접 물었다.

"온타, 우리는 당신이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왜 그런 실수를 한 거죠?
 예하베의 황소로는
 아이아이 주위의 모든 부시맨은 고사하고
 한 무리도 제대로 먹일 수 없어요."

그는 아이아이 근처에는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7개의 무리가 있으며,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려주었다.

"당신은 아마 우리의 수가
 꽤 많다는 것을 잊었던 것 같아요.
 알고 있었다면
 우리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살찐 암소를 골랐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늙고 야윈 황소를 고르다니.
 당신이 고른 그 황소는
 거의 죽을 정도로 말랐단 말이에요."

"이보게." 나는 반박했다.
"그건 멋진 황소일세.
 나는 크리스마스에
 자네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걸 먹게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네."

"물론 우리는 그걸 먹게 되겠지요.
 그것도 음식이니까요.
 그러나 그걸 먹는다고
 우리가 신들려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힘을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군요.
 그걸 먹고 난 후 배탈이 나서
 배를 움켜쥐고 뒹굴지나 않을까 걱정되는데요."


그날밤 나는 아내인 낸시(Nancy)에게 물었다.
"그 검은 황소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보기에는 아주 큰 것 같은데요. 왜요?"

"음, 모두 8사람이 내가 속았다고 말했어요.
 그 황소가 살은 없고 뼈만 남았다는 거예요."

"뭐가 문제인가요? 무슨 다른 수가 있대요?"
 낸시가 물었다.
"그들이 더 좋은 소를 팔 수 있다고 그래요?"

"아니오. 주위에서
 당장 큰 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크리스마스는 아마
 가장 끔찍한 크리스마스가 될거라는 거요.
 내일 아침 내가 그 황소를
 다시 한 번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할 것 같소."


츠와나 목장주의 한 사람인
할링이시(Halingisi)는
똑똑하면서도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가 우리 캠프에 나타났다.

그에게 예하베의 검은황소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기 전에 그가 먼저 내게
비밀스러운 대화를 암시하는 눈짓을 보내왔다.
우리는 캠프를 떠나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 함께 앉았다.

"온타, 당신은 여기서 3년씩이나 살았으면서도
 소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르다니 
 정말 놀랍군요."

"소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있다 해도
 어떤 소가 가장 크고 강한 소인지를
 쉽게 판별하기는 어려운 일 아니오?"
 라고 나는 반박했다.

"보시오. 소가 크다는 것이
 곧 살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 검은 황소도 옛날에는 살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죽을 정도로 바짝 말랐단 말이오."

"어쨌든 나는 이미 그걸 사버렸소.
 이제 어쩔 수가 없소."

"벌써 사버렸다고요?
 내 생각엔 좀더 신중했어야 했어요.
 자, 아무튼 그걸 잡아서
 사람들에게 먹이기는 해야 할 거 아니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춤추러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시오."

그의 말을 듣자 나는 너무나 낙담했다.
그 검은 황소에 대해
벵아와 가우고는 충고를 해 주었지만,
할링이시는 나를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종일토록 캠프 주위를 배회했다.


오후에는 토마조(Tomazo)가 찾아왔다.
토마조는 훌륭한 사냥꾼이자
가장 신뢰하는 정보제공자이기도 했다.
나에 대한 그날의
부시맨족의 문화와 관습 교육 중에는
크리스마스 황소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살코기를 좋아해요.
 사냥할 때 항상 살이 많거나
 하얀 지방질이 많은 사냥감을 찾아다녀요.
 하양 지방질을 요리하면
 투명하면서도 찐득찐득한 기름으로 변하고
 당신 같은 사람이 먹으면
 식도로 흘러 들어가 위를 채우고
 나중에는 심한 설사를 일으키기도 하죠."
그는 몹시 흥분하며 말했다.

그는 계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예하베의 검은 황소같이
 바짝 마른 소를 대접받으면 고민하게 되죠.
 물론 그건 크죠.
 그리고 그 큰 뼈는 맛있는 국을 만드는
 좋은 재료가 되죠.

 그러나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살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올해
 크리스마스에 먹게 될 것에 대해
 별로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아요."

이제 나는 그들이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까봐 걱정되어
토마조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살찐 소를 찾아보시오. 작지만 살찐 소,
 그것도 어린 송아지로 말이오.
 당신이 우리가 곰(gom) 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살찐 소를 찾아내면
 모두 기뻐할 거요."

곰이란 부시맨 말로
창자를 꽉 채운 상태를 말한다.
그의 말에 따라 그런 소를 찾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나이나이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잡을 황소가 야위고 말라서
살집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돌게 되었고,
그 이야기는
축제를 위해 수풀에서 나온 사람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안 좋은 소식이 되었다.

그러나 진짜 큰 문제는
인근에서 매우 사납고 냉혹하며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노인인
우아우(u!au) 가 나를 찾아왔을 때 일어났다.

그에게는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나를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딱딱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검은 황소에 대해 들을 수 있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좀더 일찍 찾아왔을 것이오.

 온타, 사람들에게 그런 고기를 먹여도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소?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그는 자기가 말한 의미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라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온타, 당신은 백인이오.
 여기에는 사나운 사람들이 수없이 많소.
 그런 적은 양의 고기를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단 말이오.

어떤이는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더 많이 가졌다느니,
어떤 사람이 혼자 고기를 독차지 했다느니
하는 비난들이 쏟아질 게 분명하오.

어떤 사람은 먹고
다른 사람은 못 먹어서 굶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당신이 더 잘 알것이 아니오."

심각한 논쟁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럴 수 있었다.

이것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이곳 사람들이
사냥감을 잡은 뒤에
그 고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심각한 긴장이 발생하는 것을
이미 목격한 바 있었으며,

고기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수 차례에 걸쳐 실제로 일어났거나
일어나리라 예상되는 말다툼에 관해
이미 많은 자료를 모아왔던 것이다.

사냥감을 잡은 사람들은
그 고깃덩어리를 부족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기 위해
보통 2시간이 넘게 그 일에 매달려야 했다.

나는 과거에 아이아이의 크리스마스 축제가
무리들 간에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다시 살찐 암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나의 모든 수고는
결국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분명 엉망이 될 것이고,
그 바짝 마른 황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나는 재치 있게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할
변명거리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이성을 잃고 혼란을 겪은 후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소를 잡아
대접할 수 밖에 없다고 마음먹었다.
만약 고기가 부족하다면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되겠지만 말이다.

부시맨들이 하는 식으로
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나는 뭘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너무 늙고 야윈 소를 고르기는 했지만
 아무튼 우리는 그걸 먹게 될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벵아는 내게 위안의 말을 건넸다.

"소는 말랐지만
 그 뼈로는 훌륭한 국을 만들 수 있을 거요."


크리스마스 새벽에 나는 한 친구에게
그 검은 황소를 잡아 요리해 달라고 부탁하고
수풀 속에서 낸시와 단 둘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채비를 했다.

그러나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바짝 마른 황소가
어떻게 도살되는지를 보고 싶었고,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점에서는
구제불능인 것 같았다.

큰 황소가 우리의 춤판에 끌려왔고
이마에 총을 한 방 맞자 곧바로 풀썩 쓰러졌다.
곧 사람들이 살을 도려낼 도구를 손에 쥔 채
쓰러진 황소 주위로 모여들었다.

열 명의 남자가 고기를 자르는 일을 도왔고,
나는 가우고에게
젖가슴 부위의 뼈를 잘라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내장을 쉽게 꺼내기 위한 것으로,
큰 사냥감을 도살할 때
사냥꾼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사냥감의 살이 얼마나 되는지
빨리알기 위해서도 그 과정은 필요했다.
사냥감이 야윈 경우에는 내장을 꺼내려면
칼로 뼈 있는 데까지를 잘라야 하지만,
살찔 경우에는 하얀 지방층을 이루고 있는
가슴에서 깊이 2.5cm 정도 까지만 잘라도
내장을 꺼내는 데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가우고는 그 큰 황소로 인해 왜소해 보였다.
사람들은 시선을 집중한 채,
그가 소의 젖가슴 부위를
잘라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두세 번 계속해서 그가 칼질을 하자
크림 같은 하얀 부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아직 뼈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순수한 지방이었다.
두께가 5cm는 족히 될 법 했다.


"헤이, 가우고"
내가 가우고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내가 보기엔 그 황소가 살이 꽤 많은 것 같은데,
 너무 말라서 먹기 어렵다던
 당신의 말은 도대체 어찌 된 거요?
 당신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요?"

"살이라고요?" 가우고는 내게 되물었다.
"당신 지금 이 황소의 살이라고 했소?
 이건 야위고 병들어 거의 죽은 황소예요!"

그렇게 말하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그들은 땅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나를 빼곤 모두가 정신없이 웃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텐트로 돌아와 문을 확 열어제쳤다.
낸시가 막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이봐요, 그 검은 황소 말인데요.
 실은 그게 굉장히 살찐 소였어요!
 그런데도 모두들
 잡아먹기엔 너무 말랐다고 나를 놀린 거요.
 그건 지독한 농담이었어요.
 자, 어서 옷을 입어요.
 그 일로 모두들 재미있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어요."

낸시는 "농담이었다고요?
일이 아주 우습게 되어버렸군요."
라고 말했다.


그것이 정말 농담이었다면
다른 수많은 농담이 그렇듯이
재미로 한 농담이거나 악의에 찬 농담,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정신이 번쩍 들게 한 농담이었다.

나는 도살장소로 다시 갔다.
이미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남자들은 모두 크게 웃으며
팔과 팔꿈치에 도살된 소의 피를 바른 채,
25kg에 달하는 고깃덩어리를
무쇠로 만든 큰 냄비에 넣고
계속해서 끓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들은
소가 너무 바싹 말라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이야기와
온타가 형편없는 판단력을 갖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계속 웃고 떠들며 즐거워 했다.

우리는 함께 춤을 추며
이틀 낮과 밤 동안 그 황소를 먹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준비한 14개의 냄비에
고기를 가득 채워서 골고루 나눠 주었다.

아무도 배고픈 채로 귀가하지 않았고
싸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농담은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부시맨들과 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단서는
농담의 의미에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며칠 후에 사람들이
수풀 속의 캠프에 돌아왔을 때,
부시맨은 아니지만
어느 누구보다 부시맨의 문화를 잘 알고 있는
츠와나족 출신 남자인
하켁고세(Hakekgose)에게
이 문제에 관해 물어보았다.

"우리 백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우정과 형제애의 날이에요.
 그런데 왜 부시맨들이
 크리스마스에 잡아먹기 위해
 내가 사서 선물한 황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많이 하고
 또 나를 놀렸는지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아요.
 사실 그 소는 꽤 괜찮았는데
 왜 그런 농담과 조롱을 했던 건가요?"

"그래요. 그건 정말 당신을 꽤 괴롭혔지요."
라고 하켁고세가 말했다.
"그런데, 그게 그들의 방식이에요.
 그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내가 총을 잃어버리면
 그들은 하루 종일 나를 놀려요.

 내가 훌륭한 사냥감을 사냥했다 해도
 사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지요.
 내가 너무 작거나 늙었거나
 비쩍 마른 것들만 사냥했다고 놀리죠.

 사냥을 끝내고
 사냥한 동물의 간(肝)을 함께 나눠 먹을 때도
 '오, 이 사냥감은 너무 심하게 말랐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라며 계속 중얼거리죠.
 
 나는 이런 장난기가
 그들이 사냥을 하는 주된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게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인가요?" 내가 물었다.

"아니오.
 그들은 서로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해요.
 그건 그들의 관습이에요.
 그들에게 한번 직접 물어보세요."


가우고는 내 기분을 몹시 상하게 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우선 그를 찾아갔다.

"당신은 왜 내게
 그 검은 황소가 쓸모 없다고 말했죠?
 그 소가 실은 살과 고기가 꽤 많은,
 쓸만한 소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죠?"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우리 식으로 말한 거예요.
 소를 둘러싼 문제를 놓고
 사람을 놀리는 건 항상 있는 일이죠.

 가령 부시맨 한 사람이
 사냥을 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서 허풍쟁이처럼
 '나는 수풀 속에서 아주 큰 놈을 잡았다!'
 고 절대로 떠벌이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오늘 수풀 속에서 뭘 보았나?'
 라고 물어보기 전에는
 그냥 침묵한 채 가만히 있다가
 질문을 받으면 조용히 이렇게 대답하죠.

 '아, 사냥하는 도중에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답니다.
  아주 작은 놈 하나만 잡았을 뿐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가만히 미소짓죠.
 왜냐하면 그건
 그가 아주 큰 놈을 잡았다는 것을 뜻하니까요."

그는 말을 계속했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그가 잡은 짐승을 캠프로 가져오기 위해
 고기를 잘라 옮길 사람 너댓 명으로
 조를 만들지요.

 도살장소에 도착해서는 한 사람이 먼저
 짐승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이렇게 외치죠.

 '아니, 이렇게 살이 없고 뼈만 많은 걸
  집으로 옮기려고 우리더러
  하루 종일 힘을 쓰게 한단 말이오?
  정말 한심하군.
  아, 이렇게 바짝 마른 것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아예 오지 않았을 텐데'
 라고 말이오.

 또 한 사람은 목청을 더 높여서
 '이보게나, 이 보잘것 없는 짐승 때문에
  내 좋은 하루를 망친다고 생각해 보게나.
  그냥 집에 있었더라면 물론 배는 고프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시원한 물을 마실 수는 있지 않았겠나!'
 라고 외치죠.

 살은 빈약하더라도 뿔이라도 큰 경우에는
 아마 이렇게 말할 거요.

 '아니, 당신은 고기를 먹으려고
  이걸 잡은 게 아니라,
  이 뿔로 국을 끓일 생각을 한 거로군요?'
 라고요."


"이런 말들에 대해
 사냥한 사람은 반드시 이렇게 반응해야 합니다.

 가령 '내가 보기에도
 이건 정말 보잘것 없는 짐승이군요.
 그러나 앞으로 사냥할 힘을 더 내기 위해
 우선 간(肝)만 먹기로 하고
 나머지는 하이에나 몫으로 남겨 두도록 하죠.

 하지만 오늘 사냥이 모두 끝난 건 아닙니다.
 이 쓰레기같은 짐승에 대해선
 더 이상 신경쓰지 말고
 다른 사냥감이나 찾아 봅시다' 라고 말이죠.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 짐승을 잡아
 고기를 캠프로 옮겨와서 모두 함께 먹는거죠."

가우고의 설명은 그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토마조를 찾아갔다.

그는 부시맨들에게는
'사냥에 관한 한
 사냥꾼을 모욕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가우고의 말이 사실이라고 거듭 확인시키고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덧붙여
그것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어차피 그 고기를 모두가 먹을 텐데,
 왜 사람을 일부러 곤경에 빠뜨려 놓고
 모욕을 주는 거지요?"

"그건 교만 때문이지요" 라고
그는 무슨 중대한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것처럼
차분히 대답했다.

"교만이라고요?"

"그래요.
 어떤 사람이 너무 많은 짐승을 잡게 되면
 그는 자기가 무슨 추장이나 그에 버금가는
 대단한 사람이 된 걸로 착각하게 되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하인이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으로 여기게 돼요.

 그렇게 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돼요.
 잘난 체하거나 교만한 사람을
 그냥 둬서는 절대로 안돼요.
 반드시 막아야 해요.

 그의 교만이나 자만심이 언젠가는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가 사냥한 짐승의 고기가
 정말 형편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그의 마음에 교만함이 차지 않게 하여
 그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거지요."


이제 모든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서
산만하게 보였던 부분들이
이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부시맨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나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부족사람들한테
담배를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 한사람 뿐이었다.

그것은 내가 힘을 갖고 있다는 표시였다.
그들은 한편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성가시게 여기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떠날까 봐 불안해 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나는 온갖 교만에 물들어 있었으며,
그들은 그런 나에게
겸손함의 미덕을 가르쳐 준 것이다.


부시맨들은 내게
실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교훈을 알려 주었다.
그것이 갑작스럽게 내 약점을 건드렸기 때문에
기분이 무척 나쁘기도 했다.

이 '검은 황소' 사건은
아이아이에서 현지조사를 행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관대한 사람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려다
나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그들의 반응을
결국 이해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들이 내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관대한 행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행동은 먼저 머리 속에서
 철저히 계산된 후에 나타나는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크리스마스에 검은 황소 한 마리를 잡아
 우리들에게 먹이려 했다는 것은
 당신이 선물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고
 머리 속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리저리 재면서
 계산을 했는가를 알려줄 뿐이다.

 사냥감을 잡아
 그 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은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지
 특별한 행사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소에 늘상 그렇게 하듯이
 했을 뿐이다."


부시맨들은 이 메시지의 교훈을
내게 가르쳐 주기 위해
작은 익살극을 훌륭하게 연기해 낸 것이다.
부족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정말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그것이 흑인사회이든 백인사회이든 간에,
부시맨들이 수세대에 걸쳐
자기보다 더 강한 사회와 접촉하는 과정에서도
문화적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농담이나 조롱과 같은
독특한 철학 또는 정신을
철저하게 고수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서
아직도 그들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그들이 오래 전부터 그곳에서
그러한 독자적인
철학적 전통의 맥을 이어가면서
꿋꿋하게 살아 왔듯이
그 전통을 간직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By Richard Lee.

words from http://www.mc.maricopa.edu/dept/d10/asb/anthro2003/lifeways/kalahari/kalahari.html
photo search and harmonized by Storyway.